
어느 노인의 구겨진 쪽지
돈 있다 위세치 말고
공부 많이 했다고 잘난척 하지 말고
건강하다고 자랑치 말고
명예가 있어도 뽐내지 마소
다~~아 소용없더이다
나이 들고 병들어 누우니
잘난 자나 못난 자나 너 나없고
남의 손 빌려 하루를 살더이다
그래도 살아 있어 남의 손에 끼니 이어가며
똥, 오줌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구려
당당하던 그 기세
그 모습이 허망하고 허망하구려
내 형제 내 식구가 최고인 양
남을 업신여기지 마시구려
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 식구 아닌
바로 그 남들이 어쩌면
이토록 고맙게 해주는지.....
웃는 얼굴로 따뜻한 미소 지으며
날 이렇게 잘도 돌봐주더이다
아들 낳으면 일촌이요
사춘기가 되니 남남이 되고
대학가면 사촌이 되고
군대가면 손님이요
군대 다녀오면 팔촌이더이다
장가가면 사돈되고
애 낳으면 내나라 동포요
이민 가면 해외 동포되더이다
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이고
딸만 둘이면 은메달인데
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이고
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 하더이다
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이고
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요
딸은 아직도 내 사랑이구려
자식은 모두 출가시켜 놓으니
아들은 큰 도둑놈이요
딸은 예쁜 도둑이더이다
그리고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지 말고
사위는 아들로 착각하는 일 마시오
인생 다 부질없더이다
인생 다 끝나가는
이 노부의 푸념이 한스러울 뿐이구려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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